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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의 시사칼럼] 승려와 무속인을 화나게 만든 정치판

모락 권정찬/화가, 문학가

기사입력 2022-01-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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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며 후세까지 많은 문화유산을 남겨 육안으로 확인시켜준 종교가 불교이다. 나라 곳곳의 박물관은 불교미술품으로 가득하다. 그만큼 우리민족의 종교로 자리 잡고 내려왔다. 그러다가 조선의 억불숭유정책에 의한 탄압을 거쳐 조선말기 천주교와 기독교의 유입으로 다종교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나 그 이후에도 불교는 호국불교로 그 힘으로 국난을 피하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몽고의 침입을 막으려고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승병을 일으켜 임진왜란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왕이나 왕비는 늘 절을 찾고 국가나 왕실의 안위를 위해 불사를 한 기록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그러한 종교적 기록들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미술품으로 차지하는 비율이 엄청나다.

 

불교의 승려들은 절간에서 자신을 찾는 수행으로 깨달음을 찾기도 하고, 학문에 몰두하기도 하며 신도들의 조상제사와 안위를 위한 방패와 설법으로 대중들에게 봉사하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사주도 봐주고 부적도 나누어 준다. 그러니 절은 가까운 이웃이요 심신을 의지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내려왔다. 그러한 불교의식은 민간신앙인 무속과도 합습이 되어 절간에 산신각이 있고 스님들도 제를 많이 지낸다. 무속인들과 방법은 다를지는 몰라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

 

무속신앙, 우리 민족의 종교이다. 그러나 박정희시대에 나라를 개혁하는 과정에 샤머니즘, 즉 없애야 할 미신으로 추락시켰다. 조선시대의 불교탄압과 유사한 과정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없어질 무속이 아니었다. 그들은 죽은 신계와도 연결되어있고 영적 혜안이 일반인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조선불교의 입장이 그렇듯이 무속신앙도 겉으로는 멀리하는 듯해도 뒤로는 정치인, 경제인 본인이나 가족들 중 누군가는 찾는 곳이다. 큰 실마리나 가정의 어려움, 아픔에 병원 못지않게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무속인은 우리나라 농촌을 먹여 살리는 직업이라 자부한다. 돼지고기나 과일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무속인들이 굿을 중단하면 돼지고기, 과일파동이 난다고도 했다. 그 만큼 대중들에게는 무시하지 못할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불교와 무속인들이 최근 대통령선거 운동과정에 몰지각한 정치인들에 의해 몰매를 맞거나 비하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마치 불교인이나 무속인들은 투표권이 없는 냥 마구 몰아 부친다. “선거캠프에 나타났다. 후보나 후보 부인이 그런 사람과 만난다.” 역술인이나 무속인들은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불교에는 한 수 더 뜬다. 국가법에 의해 사찰문화재보호명목으로 관람료를 지금껏 받아온 것을 봉이 김선달에 빗대고 산적 운운을 한다.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막말을 했다. 그러니 전국의 승려가 들고 일어났고 특정종교에만 맹신하는 듯 하는 대통령까지 욕을 먹는다.

 

우리나라 불교 인구는 2005년을 기준으로 신앙인의 42.9%를 차지하는 1,073만으로 천만이 넘는 유일한 종교로 집계가 되었다. 그리고 무속인의 수도 100만 명 정도로 추산하니 한 집에 찾는 사람이 평균 최소 10명이라 해도 1,000만 명이라는 셈이다. 국가에서는 사업자 등록증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하지만 년 간 시장규모가 4~5조원대로 보고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이제 어떤 목적으로도 종교나 민족 신앙을 폄하하는 몰지각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전통 굿의 전통명맥을 위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지 않는가? 종교나 미신은 개인의 취향이지 금기사항의 잣대가 아니다. 어떤 종교이든 사이비라고 부르는 자의 인격체가 사이비이다.

 

투표에서 스님도 무속인도 가난한 사람도 대통령도 모두 한 표일 뿐이다.

박희옥 (heeok50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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