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미로와 같다. 그중에서도 유독 길을 잃기 쉬운 곳이 바로 ‘남 탓’이라는 출구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내 잘못이 아니라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거나 생각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걸까? 남 탓은 단순히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이면에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존감 보호에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유능하고 긍정적인 존재로 여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실패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이 깨지기 쉬운 자아상이 위협받는다. “내가 부족해서 실패했구나”라고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자기효능감에 큰 타격이 온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우리 뇌는 무의식적으로 외부 요인을 찾기 시작한다. ‘나’는 괜찮은데, ‘상황’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다. 남 탓은 일종의 방어 기제인 셈이다.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삶의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하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이때, 실패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면 “나는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구나”라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 “네가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마치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는데 타인 때문에 실패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심리는 일시적으로나마 무력감을 해소하고 통제력을 회복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어릴 적부터 잘못을 회피하는 것이 익숙했던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 부모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수에 대해 심하게 질책받은 경험이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 큰 처벌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을 수 있다. 이 두려움은 무의식적으로 남 탓이라는 습관을 낳는다. 남 탓은 일종의 심리적 도피처가 되어, 책임을 회피하고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된다.
물론 남 탓은 일시적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독과 같다. 남에게 원인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자체를 멈추게 된다. “내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 대신, “왜 저 사람이 저렇게 했을까?”라는 비난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장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남 탓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충동이 들 때, 잠시 멈추고 “내가 이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건 어떨까? 이 작은 질문 하나가 남 탓이라는 미로의 출구를 찾아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새해부터는 남탓을 통해 환상 속의 가짜 자기가 아니라 현실의 진짜 자기를 마주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 정신을 다시 생각하고 실천하여 배려하고 양보하는 나와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효산 조용태(심리상담전문가, 한국예술심리치료연구소 소장)